'블랙홀' 대기업, 한국판 페이스북 꿈 깨!
2010.12.03
"IT(정보기술) 혁신은 덩치가 클수록 불리하다. 한국판 페이스북, 트위터는 네이버, 다음이 아닌 지금 1~2인 기업들 가운데 나올 것이다."
10년 전 '닷컴(인터넷기업) 열풍'이 '모바일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 극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가 애플 앱스토어, 구글 안드로이드마켓 등 오픈 마켓을 통한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개발자들의 화려한 부활이다.
앞서 IT 전문가 정지훈 관동의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른바 '1인 창조기업'이나 '미소기업'(10인 이하의 창조적 아이디어 기업) 등 모바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관련 IT 벤처기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어느 때보다 뜨겁다.
모바일 창업, 10년 전 닷컴 열풍 재연하나
지난 18일 오후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미소기업창조재단(이사장 송상호 경희대 교수) 주최로 열린 '방송통신산업의 동반성장 구축 포럼' 역시 그런 관심이 누적된 결과다. 학계와 방송통신위원회, SK텔레콤, KT 등 정부, IT업계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한국에도 구글, 페이스북을 만드는 토양을 만들자'며 머리를 맞댄 것이다.
이날 주인공은 역시 20~30대 젊은 창업자였다. 이현석(30) 시프트더블유 대표와 김대식(28) 피더블류랩 대표는 현재 티켓몬스터 같은 '소셜 쿠폰(SNS를 활용한 공동 구매 형태의 할인 쿠폰)'들만 모아놓은 '소쿠리(www.socury.com)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e비즈니스 연구실에서 만나 지난해 6월과 올해 9월 각각 1인 기업을 만든 뒤 이 서비스를 계기로 의기투합했다.
[창업 1년차] "여러 서비스 중 되는 것 민다... 실패는 두렵지 않아"
▲ 18일 오후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미소기업창조재단 주최로 열린 '방송통신산업의 동반성장 구축 포럼'에서 1인 청년 창업자인 이현석 시프트더블유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
ⓒ 김시연 |
이들의 사업 전략은 단순하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최대한 빨리 서비스로 만들고 시장에서 반응이 좋으면 힘을 합쳐 밀자는 것이다.
창업 1년 4개월째인 이현석 대표는 "과거엔 '선여과 후출판(편집자가 먼저 걸러내 출판하는)' 시대였다면 웹 비즈니스에선 '선출판 후여과(온라인에 먼저 출판된 것을 편집자가 골라내는)' 개념의 회사가 많다"면서 "여러 서비스를 해보니 반응이 좋아 양사가 합작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웹 비즈니스는 다른 일보다 창업이 손쉽고 좋은 서비스를 선보이면 더 크게 성공할 수도 있다"면서 "생각보다 시행착오는 많지만 좋은 직장을 찾기보다 내 힘으로 세상을 바꿔보자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콘텐츠 제공자와 플랫폼 사업자가 수익을 7대 3으로 배분하는 오픈마켓 등장 이후 앱 생태계 변화는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 줬다. 오픈 플랫폼을 바탕으로 앱 개발자들과 상생하는 애플이나 페이스북 등의 '에코시스템'에 자극받은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정부에서도 앱 개발자 및 1인 창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식 대표는 "정부의 중소 예비 기술 창업자 지원을 받아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 덕에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과거 모바일 콘텐츠 시장은 이통사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는데 지금은 개방돼 있어 아이디어가 괜찮고 사용자에게 가치가 있으면 7:3 배분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앱 평균 제작비는 3500만 원인데 평균 수입은 80만 원 정도라고 할 정도로 잘 안 되는 부분도 물론 있다"면서도 "앱 관련 시장이 밝고 대부분 실패하더라도 새롭게 시도하기에 충분히 젊다"고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창업 2년차] "앱스토어 성공 신화도 한때... '투잡'으론 어려워"
▲ 2년 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를 창업한 이양현 포브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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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모바일 창업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다음날(19일) 아침 '1인 창조기업' 8곳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서울 역삼동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작지원센터를 찾았다. 말이 1인 기업이지 저마다 10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는 4~6명 안팎의 개발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일하고 있었다. 이제 막 창업한 겁 없는 20대들과 달리 10년 전 닷컴 거품 붕괴를 이미 경험한 세대들은 좀 더 신중했다.
"앱스토어 해외 런칭 성공 신화 때문에 한때 너도 나도 뛰어들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쟁이 치열하고 투자에 비해 매출이 안 나오니까 뒤돌아서는 경우가 많았죠."
'6호실' 이양현 포브(www.pove.kr) 대표는 국내 아이폰이 보급되기 전인 2008년 11월 모바일 앱을 만들어 해외 시장 문을 먼저 두드렸다. 아이팟터치용 리듬 게임 '소울 터치'부터 이보영-문단열 영어회화 등 게임, 교육 관련 앱 10여 종을 개발하고 직접 보급 작업까지 하고 있다. 당시 나 홀로 뛰어든 이 대표지만 부업이나 취미 삼아 모바일 앱 개발에 뛰어드는 것엔 회의적이다.
"더는 '투잡'이 먹히기 힘든 시장이에요. 기업과 맞물리면서 개인이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가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로 도태돼버릴 수밖에 없죠."
[창업 10년차] "벤처도 기다림의 미학... 소셜 커머스 붐 경계"
▲ 2000년대 초반 고등학생 벤처 창업으로 유명세를 탔던 양준철 온오프믹스 대표. | |
ⓒ 김시연 |
'하루 매출 2억 넘는 그날까지 이 악물고 달리자', '투자는 제발 투자하게 해달라고 요청 올 때까지 기다리자!'
'8호실' 양준철(26) 온오프믹스 대표 책상 앞에 붙어있는 회사 목표다. 여기에는 이제 겨우 20대 중반이지만 2000년대 초반 고등학생 벤처 창업으로 주목 받은 뒤 닷컴 거품 붕괴 과정을 직접 목격한 중견 벤처기업인의 10년 경험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당시 아는 선배가 3D 쇼핑몰 사업을 제안해 벤처캐피탈에서 10억 원을 투자 받았는데 룸살롱, 나이트로 8개월 만에 탕진하고 남는 게 없더라고요. 정부에서 쉽게 돈을 주니까 쉽게 무너진 거죠."
양 대표가 10년 업계를 지켜보면 얻은 건 결국 '기다림의 미학'이다. "가능성 있는 서비스는 늦더라도 언젠가 (상승) 곡선을 타게 돼 있다"는 것이다. 최근 소셜 쿠폰 기업 '티켓몬스터'가 벤처캐피털에서 33억 원 투자를 받으며 일기 시작한 '소셜 커머스' 붐을 경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벤처캐피털은 화려한 마케팅으로 급부상하는 곳에 돈을 넣으려 하는데 건전한 기업은 천천히 성장해요. 우리도 '소셜 커머스'로 바꾸면 대박이라고 하는데, 붐이라고 따라가면 투자는 받겠지만 붐이 끝나도 가치가 있을까요?"
온오프믹스(www.onoffmix.com)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오프라인 모임이나 행사를 홍보하고 참가자를 모으는 서비스로 IT 전문가들 사이에선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불합리에서 시작했어요. 기업에서 컨벤션이나 행사를 준비하려면 홍보와 홈페이지 구축에 2000만~3000만 원씩 불러요. 정작 홍보 비용 때문에 콘텐츠 준비 여력이 딸리고 소기업들은 전혀 엄두도 못 내죠. 참가자 관리, 온라인 결제 기능만으로 누구나 오프라인 행사를 만들 수 있어 기업간 격차를 없애 주는 거죠."
"대기업은 벤처 인력-아이디어 삼키는 '블랙홀'"
▲ 모바일 앱 개발 업체인 고윤환 캘커타커뮤니케이션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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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처음 선보인 10개월 전 문정동 가든파이브 강남청년산업센터에서 만났던 고윤환(37) 캘커타커뮤니케이션 대표 역시 이곳 '5호실'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관련기사: "삼성-LG '잡스 오빠' 한테 배워야 해요" )
그새 1명이던 상주 직원도 4명으로 늘었고, 각종 공모 대회에서 입상하며 앱 개발 의뢰가 들어오는 등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대기업들의 1회성 지원엔 회의적이다.
"개발자 대상 공모 대회가 수십 개로 늘었지만 실속을 따져보면 앱 생태계 발전보다는 시대 흐름을 따르는 것이 많아요. 개발자들은 돈보다 기술 개발이나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자문이나 인큐베이팅 기회를 더 바라거든요."
18일 미소기업창조재단 포럼에서도 싸이월드 창업자인 형용준씨는 "창업자들은 돈보다 기술, 마케팅 등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전문가들과 연결해주길 원하고 있다"면서 창업 지원 개념의 변화를 주문했다.
송상호 재단 이사장 역시 "1인 창조기업 480여 개를 3일 만에 심사를 끝내고 1등에 2000만~3000만 원 주고 마는 게 현실"이라면서 "벤처캐피털 특성상 아이디어뿐인 청년 기업에 투자하기 어렵고 대기업하고 얘기해봐야 아이디어만 뺏긴다"면서 하청업체 상대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부 대기업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이현석 대표는 "요즘 벤처에선 인재 구하는 게 화두"라면서 "아이디어가 있어도 만날 통로도 없고 벤처 도전 성공에 대한 젊은이들의 기대감도 줄어 고용조차 힘들다"면서 지원 제도 못지 않게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덕수 열정대학 사무총장 역시 "지난 2005년경 500개에 달하던 전국 창업 동아리들이 지금 와서 취업 동아리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청년 창업자들의 아이디어는 차별화되지만 핵심 역량이 부족해 대기업이 후발 주자로 뛰어들면 과연 경쟁력이 있을지도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삼성-SKT 하청 말고 페이스북을 목표로 삼아야"
▲ 싸이월드 창업자인 형용준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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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배 방통위 인터넷정책과장은 "정부 지원은 1회성으로 끝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창업 이후 벤처캐피털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 투자는 민간에서 맡고 정부는 모바일 테스트 배드, 전문 인력 양성 등 간접 지원에 집중하는 게 적절하다"면서 "IT 상생 협력은 하도급 대금 문제가 아니라 인력 지원 문제인데 모 대기업이 '블랙홀'처럼 아이디어와 사람을 끌어가는 것에 대해선 선언적 의미라도 (벤처기업)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윤환 대표 역시 "기존 통신사 위주로 진행되던 앱 생태계가 지금은 삼성전자 등 제조사도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콘텐츠 소통이 트였지만 개발자 생태계만 보면 더 각박해졌다"면서 "'레드오션'이던 웹 사업자들이 앱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대형 사업자들이 큰 파이를 가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